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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솔직담백시승기

두바이에서 타본 아우디 RS7 이야기

 

 

일년 중 두 번 정도 비가 온다고 하는데, 마침 그날이었다.
 최신의 점보비행기 A380은 번개가 치는 비구름 속에서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선회하다 두바이 공항에 무거운 몸을 내릴 수 있었다.
비는 어느 정도 그치고 있었지만 공항에서 리조트로 이동하기까지,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도시인지는 몰라도 약간의 고저차가 있는 도로다 싶으면, 어김없이 침수된 도로와 차를 볼 수 있었다.

 

 

숙소로 향하기까지 십수 대의 침수차와 사고차들을 보면서, ‘이야, 이 나라는 도로 배수 시스템이 어느 정도로 엉망이길래 도로 중간중간마다 이 모양인거야’ 하고 배수시설을 탓했지만, 일년에 두 번 정도 내리는 비를 위해 배수 공사를 하는 게 더 낭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침수도로에 갇힌 침수차는 높이가 낮은 스포츠카일수록 심했다. 벤츠SLS나 페라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마 평생 본 침수차보다, 두바이에서 본 침수차의 수가 적긴 하더라도 판매가의 합은 높을 듯 싶다.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을 뒤로 하고 숙소에 도착했다. ‘내일까지 날씨가 계속 구질구질하면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기는 두바이였다.

두바이 시내에 약간의 구경을 하다 내일 있을 이벤트를 위해 숙소로 일찍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두바이에서는 R8 V10 PLUS를 비롯하여 RS4,RS5,RS6,RS7 등 RS시리즈를 타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RS시리즈. RS는 Racing sports의 약자로 아우디의 고성능 모델에 붙는 뱃지다.  

특히 RS7은 올해초 선보인 신차이고 4리터 8기통 트윈터보엔진을 달고, 560마력에 71.3kg.m토크를 자랑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에는 내년 상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는데, 운 좋게도 신차 출시 전 타보는 셈이다.
주차장으로 가니 300킬로미터도 채 달리지 않은 녀석이 날 기다리고 있다.


나는 RS4와 RS7을 번갈아 타며 두바이 시내의 명소와와 사막을 돌아다녔다.
특히나 RS7은 매혹적이다. 스포츠 모드로 기어레버를 옮겨놓는 순간, 배기음부터 달라진다. 왕복14차선이 넘어보일 것 같은 두바이의 넓직한 도로도 많은 차들로 얼추 차 있다. 


 중간중간 차들이 몰려있고, 순간적으로 모여있는 차들 사이를 빠져나갈 공간과 코스가 보였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자, 고개가 탁 하고 제껴지며 탄탄한 RS7의 헤드레스트에 부딪친다. 뒤통수에 충격이 전해진 그 짧은 사이에 RS7은 몰려 있던 차들 무리에서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빵하고 뛰쳐나와 있다.

 

 


모처럼 느껴보는 무서울 정도의 가속감에 깜짝 놀라 가속 페달을 살짝 놓았다. ‘풀악셀이 고민스러운 건 모처럼인데?’
다만 아쉬운 건 반박자 느린 가속이다. 터보 엔진 때문일까. 가속페달을 눌러 밟고, 머리와 몸이 시트에 콱 하고 파묻히기 직전에 몸과 마음이 급가속으로 인한 충격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다. 물론 이건 배려 차원이 아니라, 확실한 터보랙이다. 아무래도 이와 같은 반박자 느린 반응은 RS7을 까다로운 녀석으로 생각하게끔 할 수도 있겠다.

패들시프트를 통한 수동변속 역시 8단팁트로닉 때문인지는 몰라도 폭발적인 퍼포먼스에 비하면 약간은 답답한 맛이 남아있다.

 

 


시내에서 사막으로 향하는 도중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 구간에서 기다렸다는 듯 다시 풀악셀을 밟는다. 거의 밟자마자 ‘삐~’하고 동시에 울리는 제한속도 경고음.
출발 전 인스트럭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두바이의 과속 벌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예요. 그리고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절대 과속하지 마세요.”
“오늘 이벤트를 두바이 경찰들도 알고 있고, 여러분이 두바이를 돌아다니는 내내 도로 어디선가 여러분을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인스트럭터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만약 과속 딱지가 날아오면, 친절하게 여러분들 댁으로 보내드릴 거예요.”


경고음이 설정된 제한속도는 시속120km.
'550마력이 넘는 이 차를 가지고 계속 이렇게 얌전히 달리라고? 말도 안돼.'
공격적으로 으르렁 거리는 배기음은 실내의 스포티한 카본 장식, 계기판에 표시된 최고시속 320km표시와 어우러져 나에게 빨리 가속페달을 더 밟으라고 윽박지르는 것만 같다.

 


‘이건 어린아이에게 아주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쥐어 줘놓고, 핥아먹기만 하고 절대 깨물어먹지 마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트랙이라도 시원하게 내지르며 핸들 좀 돌려봤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 순간, 트랙에서 기다리고 있는 R8이 생각났다.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것이 더욱 더 아쉽게 느껴졌다. 이것도 타보고 싶고, 저것도 타보고 싶다. 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고, 저것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어느덧 모래사막으로 들어섰다.
비행기를 9시간이나 타고 아라비아 반도에 와서 사막도 못 보고 가는 건 아닌가 생각을 했는데, 오전의 풍경감상용 시승 코스가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달리는데, 빗방울이 앞유리창을 때렸다. 이윽고 쏟아지는 장대비.
‘정말 완벽하다. 두바이에 일년에 두 번 비가 내린다더니, 앞으로 1년은 비가 안 내리겠네...’

 

 

빗속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앞서 나가는 차들을 보며 핸들을 꼭 쥐었다.
몇 년 전이었을까. 태풍 예보가 있던 비가 몹시도 오던 어느날, 공항고속도로에서 일본산 후륜 스포츠카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난적이 있다. 폭우 속에 뒤가 몇번 살짝 흔들거리더니, 어느 순간 차의 앞과 뒤가 바뀌어 있었다. 1차선에서 4차선으로, 그리고 갓길로 앞뒤가 바뀐채 미끄러지며 마주친 2,3,4차로 버스,승용차 운전자들의 놀란 얼굴들이 아직도 또렷하다.

자동차가 운전자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움직임을 외부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게 된 뒤 후에야, 운전에 대한 자만심을 벗어버릴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약간의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그 때부터 빗길 운전은 항상 긴장되고, 타이어와 노면의 접지를 과민하게 느끼다 긴장하곤 했다. 


네바퀴 굴림 콰트로의 안정감은 이런 트라우마를 완전히 씻어내질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조금씩 평온해져 갔다. 심리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실생활에서도 네바퀴 굴림은 가장 안정적인 트랙션을 제공한다. 과격한 운전이 가능한 스포츠카도 충분히 안정적일 수 있다.

 

양을 탈을 쓴 늑대.
혹자들은 이런 차들의 수식어로 자주 쓰인다. RS7은 그것으로 부족했다. 뭐랄까.
그래, 이중인격자. 지킬박사와 하이드. 혹은 헐크.
RS7은 완벽하게 도로 위의 이중인격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 컴포트 모드에서 스포츠 모드로 전환했을 때, RS7은 완벽한 스포츠카로 변했다. 그리고, D모드에 컴포트에 맞춰놓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나긋나긋해졌다. 엔진반응에서부터 배기음,핸들링,승차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우아한 디자인을 뽐내며, 두바이의 멋진 풍경 속에 묻혀버린다.


어느덧 두바이 오토돔이 보이기 시작한다. 2시간이 20분처럼 느껴졌다.

몸은 피곤했지만, 잠시 뒤에 만날 R8 V10 PLUS를 생각하니 스팀팩을 맞은 마린처럼 힘이 솟았다.